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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위원 칼럼 - 눈을 맞추는 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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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6 1026
오피니언독자위원회
[독자위원 칼럼]눈을 맞추는 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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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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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미자 춘해보건대학교 요가과 교수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인사법은 특별하다고 들었다. 인사를 하기 전에 먼저 숨을 고른 다음,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한다고 한다.

요즘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안녕하세요”라는 목소리는 있으나 눈을 맞추고 인사하기는 드문 것 같다. 심지어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고 소리만 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에게 가장 행복을 주는 인사는 아이들과의 눈맞춤이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아이의 눈을 종종 맞춘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교감을 느낄 때가 있다. 모든 아이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자신의 순수함을 처음 보는 이에게 나누어준다. 눈을 맞추는 것은 나눔이라는 것을 아이들로부터 배우게 되는 것이다.

남인도의 티루반나말라이라는 조그마한 읍내에 ‘쉬바샥티’라는 성자가 계신다. 그곳은 성스러운 산인 ‘아루나찰라’와 ‘아루나찰레스와르’라는 쉬바 사원을 비롯하여 참나탐구와 침묵의 성자로 알려진 ‘라마나마하리쉬’의 아쉬람이 있어서 많은 구도자들이 찾는 곳이다.

구도자들이 많이 방문하는 겨울의 경우 매일 아침 10시에 누구나 쉬바샥티 성자를 만날 수 있다. 내가 방문했던 그날도 명상홀을 꽉 메운 백여명의 사람들이 쉬바샥티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쉬바샥티는 오롯이 침묵으로 방문객들에게 일일이 눈을 맞춘다. 눈이 마주치면 어떤 사람은 흐느껴 울기도하고, 어떤 이는 행복한 미소를 띠며, 어떤 이는 더 깊이 고요함으로 젖어드는 것이 보인다. 쉬바샥티의 눈과 마주했을 때 깊은 고요와 사랑을 느끼면서, 눈을 맞추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출석을 부를 때 마다 학생들의 눈을 쳐다본다. 이러한 습관은 강단에 선 이후로 계속된 듯하다. 대체로 학생들도 나의 눈을 맞추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럴 땐 그 학생의 이름을 한 번 더 부른다. 자존감이 낮거나, 위축되거나, 뭔가 정서적으로 편안하지 않을 때 누군가의 눈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굳이 한 번 더 이름을 부르면서 학생의 눈을 맞추는 것은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첫걸음이 눈맞춤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1989년 미국의 심리학자에 의해 눈맞춤의 실험이 이루어졌다. 생판부지의 48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서는 특별한 지시 없이, 다른 그룹에서는 2분간 상대방의 눈을 보라는 지시를 한 후 그 반응을 살펴본 실험이었다. 2분간 눈을 마주보았던 그룹은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더 높았다. 이 실험의 결과는 눈맞춤은 호감도와 비례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혈관에서 사랑의 호르몬을 솟구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대화시간 80%를 눈맞춤하라는 것이다. 상대에게 호감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눈을 맞추는 시간이 더 길어짐을 누구나 체험했을 것이다.

너나할 것 없이 스마트폰에 눈을 맞추고 사는 요즘, 순수한 아이들처럼 눈을 맞추면서 사랑의 에너지를 나눠주는 것이 필요하다. 엊그제 보았던 레스토랑 옆 테이블의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의 얼굴보다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식사를 한 후 떠난 뒷모습이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하듯이, 눈맞춤을 우리의 일상으로 가져오면 어떨까 싶다. 모든 존재는 사랑스러우니까.

곽미자 춘해보건대학교 요가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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